“아빠 너무 먹고 싶어. 힘들어.” 예지가 반 울먹이며 하소연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생의 첫 번째 금식이었다. 우리 부부가 성 금요일 하루금식을 하며 아이들 역시 굶식(?)을 시켰다. 처음이라 하루는 힘들 것이고 한 끼과 간식 금식은 가능하다 싶어 아이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나도 힘들어. 근데 넌 점심은 먹었잖니. 아빠는 하루 종일 못 먹어.” 나는 예지에게 예수님의 처절한 금식에 대해 얘기해줬다. 십자가에 오르시기까지 모진 학대와 폭력 속에서도 주님은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하셨다. “내가 목마르다”는 말씀은 영적 상징적 의미 이전에 매우 실제적인 고통이었다. 온 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가는 듯한 타는 목마름... 주님께서 이미 흘릴 수 있는 피와 땀을 다 쏟으셨기 때문이다.

“아 그랬구나. 그래도 배고파.” 감동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대답이 너무 쉬웠다. 갑자기 기운이 빠져버렸다. 안 그래도 허기진데 더 허기졌다. 그렇게 저녁이 돼버렸다. 한 끼만 견디면 끝난다. 하지만 금식은 끝나갈수록 시간이 정말 안 간다.

예전 삼일금식 때는 마지막 시간에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진 적이 있었다. 기운이 없어 눈을 감았는데 신나게 먹는 꿈을 꿨다. 깨어보니 쥔 손에 음식이 없었다. 많이 허망했다.

삼일에 비하면 세끼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시간이 더딘 건 비슷하다. 흥미로운 것은 더딘 강도에 따라 영적 상태가 진단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시간이 다른 때보다 힘들다면 몸 상태 뿐 아니라 마음이 허술해진 것이 분명하다. 필요 이상의 음식과 욕구들로 삶을 채웠다는 반증이다.

이번 금식만큼은 그렇게 끝내기 싫어 작전을 썼다. 미리 준비한 책과 영상을 이용했다. “교회오빠 이관희” 죽음과 싸웠던 참 신앙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많이 부끄러웠고 또 감사했다. 이런 신앙인과 함께 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만으로 고마웠다. 나에게 주어진 날들을 믿음으로 채워가리라 다시 다짐했다.

“여보, 죽 다됐어.” 오늘따라 더 고마운 아내의 음성, 마침기도를 드린다. 숟가락을 든다. 그렇게 금식 세끼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