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오늘은 국수!” “오늘은 김치찌개가 당기네.” “저녁에 카레 먹고 싶어. 카레” 아내가 잠시 집을 비운 후 나는 주부가 되었다. 그것도 입맛이 수시로 변하는-나를 닮아서 그러니 할 말이 없다;;-미식가 초딩을 먹여야 하는 아빠 요리사가 되고 말았다.

난감했다. 그래도 이런 기회가 언제 올까 싶어 소매를 걷어붙였다. “알았어. 그럼 멸치로 국물을 낼게.” “스크램블이 낫니? 프라이가 낫니? 참고로 난 계란말이는 못해.” 간만에 칼질을 한다. 쏘시지가 잘 썰어진다. 살펴보니 날이 너무 무디다. 그때 갑자기 떠오르는 아내의 한 마디... “오빠, 칼날 좀 한번 봐줘. 잘 안 썰어져.”

용케 카레를 해냈다. 반숙 계란 프라이를 토핑해서 나름 풍미가 있다. “엄청 맛있어. 아빠 정말 잘하네.” 이 말이 나쁘지가 않다. 그 칭찬 한마디 때문에 나는 점점 예지 담당 쉐프가 되고 있었다.

“오늘은 나가서 먹으면 안될까?” “추우니까 그냥 집에서 시켜 먹을래.” 설거지거리를 줄이려 꼼수를 쓰다가 일이 더 복잡해졌다. 하루 두세 끼 끼니를 챙기고 나면 어느새 그릇들이 수북이 쌓인다. 또 다시 아내의 모습이 지나간다. 싱크대 앞에서 조용히 설거지를 하던 뒷 모습...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딱 그거다. 그때는 몰랐다. 왜 아내가 그렇게 외식을 하자고 했는지... 틈만 나면 싱크대 앞에 서 있었는지... 반찬 투정하는 예지와 유치하게 싸웠는지... 정확히 일주일 만에 아내의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그리고 마음 한편이 짠해졌다.

사람은 그렇다.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계산은 쉽고 판단은 빠르지만, 각자의 상황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한 박자 느린 말이다. 이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싸운다. 어려워진다.

갑자기 뚱딴지같은 생각이 올라왔다. ‘우리 교회도 한주 정도 사역을 다 바꿔보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웃기다. 웃다가 갑자기 주방으로 달려간다. 가스불에 열심히 찌개가 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