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베란다에 화분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3단짜리 화분진열대가 들어섰다. 작은 화분들이 진열대에 올라서더니 곧 자리를 다 메워버렸다. 급기야 중간화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막 터지기 직전의 꽃봉오리들이 심겨진 장미 화분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침마다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각각의 화분마다 작은 푯말들을 꽂아 놓고는 일방적인 수다를 떨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아무도 없을 때 확인해보았다. 축복이, 행복이, 사랑이, 예삐, 까칠이... 애정 어린 화분이름이었다. (참고로 까칠이는 선인장이다;;)

사실 아이들이 지어주고 싶었던 이름은 식물이름이 아니라 강아지이름이었다. 몇 달째 강아지를 사달라는 가정시위가 있었다. 도둑게의 비극(메말라 돌아가셨다;;)을 거울삼아 더 이상 죽음은 안 된다며 나는 강력히 반대했다. 덕분에 피도 눈물도 없는 독재자가 돼버렸다.

아내 역시 강아지를 원했지만, 나처럼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고자 개를 훌륭히 여기시는 강형욱 씨의 영상을 모아서 봤다. 그리고는 화분을 모았다. 강아지처럼 이름을 짓고는 애정을 쏟아 부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개 같은 화분들”이었다.

“아빠, 이것 봐봐. 장미가 폈어.” “아빠, 안개꽃 화분에 새싹이 엄청 올라왔어.” 안 그래도 온라인개학 때문에 짜증이 나 있는 아이들은 화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매일 아침, 장미들에게 바람을 주고, 작은 화분들에게 물을 뿌린다. 오글거리는 인사를 하고, 맥락 없는 대화를 하며 애정을 쏟는다. 그리고 집안에는 도둑게의 죽음이 잊힐 만큼 생명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봄볕이 창문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어찌 될지 모르나 사랑이와 까칠이, 기타 등등은 도둑게보다 오래 갈 것 같다. 물론 강아지 같은 화분들이 강아지 같이 정감 넘치지는 못하겠지만, 작은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배워서 큰 생명에 도전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하나님 역시 그 마음이신 것 같다. 바이러스에 발목이 묶여버린 한계상황 속에서 작은 열심을 통해 큰 열심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 아닌지... 봄바람이 좋다. 난간에 장미 내놓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