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큰 명절 설을 맞이하였다.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식탁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며 한해를 축복하는 이날, 우리 주위에 조금 다른 이야기로 연휴를 채우는 사람들이 있다. 부담스러운 설음식도 아이들의 요란한 소리도 없다. 인사를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서로 나누는 선물도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고향이 이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인노동자, 줄임말로 외노자의 설 명절은 쓸쓸하다. 잠시 공장이 멈추기 때문에 휴식을 취할 수는 있으나 적막한 고요만이 흐른다. 텅 빈 기숙사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으며 끼니를 때우거나 잠시 고향친구를 만나는 정도이다. 가족을 보고 싶어 영상전화로 그리움을 달랠 뿐이다.

200여만 원을 벌어 150만원을 가족에게 보내고 남은 돈으로 생활비를 쓴다.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해준다면 행복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월세에 밥값에 각종 공과금에 이리저리 제하면 남는 돈이 없다. 고된 인내 끝에 고국으로 돌아가 성공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족과의 생이별을 감수해야하는 고통이 생각보다 크다.

중국선교기간 동안 현지교회에서 1년 넘게 조선족아이들을 섬겼다. 아이들의 대부분이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에서 식당일을 하는 엄마, 공장에서 작업하는 아빠... 결국 아이들은 할머니 밑에서 사춘기를 지낸다. 기다림 끝에 아이들이 돌아오면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귀국하지 않거나 연락이 끊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아이들은 항상 외롭고 불안하였다. 아직도 아이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나 역시 아버지를 기다리며 10년을 보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신명기 말씀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나그네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잊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내년 설에는 우리 교회도 이분들을 섬길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 아직 우리교회가 작고 미약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음을 믿는다. 준비된 심령에 부흥을 주실 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