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눈이 내렸다. 저녁기도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맞았다. 기도원에 올라와서 눈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내일 돌아갈 때 길이 녹아있어야 할텐데... 너무 많이 내리면 교회지붕이 무리가 될텐데...”

눈을 대하는 반응에 따라 나이를 알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하염없이 신나하는 어린아이들... 연인과 약속을 챙기는 청춘들... 세차 걱정, 도로 걱정하는 중년... 길 미끄러울까 걱정하시는 어르신들... 내 경우는 분명 중년이 맞다. 눈에 대한 낭만이 사라진지 오래다.

2006년 뉴욕에서 맞이한 첫눈은 정말 테러수준이었다. 폭포 같은 싸라기눈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발목에 차더니 정강이까지 오르고 결국 도로를 잠겨버렸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다. 하룻밤이 지나면 눈은 바위가 된다. 진짜 바위처럼 딱딱해진다. 봄까지 녹지 않는다. 더구나 바위 눈에 닿으면 차에 스트레치가 갈 정도다.

그런 괴물 같은 눈이 내리던 밤, 눈을 치우러 교회를 갔다. 쓸고 또 쓸어 사람 다닐 길을 만들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행인이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치료비를 물어낼 수도 있다. 자정이 넘어서야 청소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시동을 걸었다. 먹통이었다. 아내는 뒤에서 밀고 나는 앞에서 끌었다. 한 시간을 실랑이를 해서 겨우 집에 돌아왔다. 아마 그때부터 눈이 싫어진 것 같다. 낭만도 무너진 것 같다. 하얀 눈은 좋지만 눈을 치우려고 지새야하는 하얀 밤은 싫었다.

저녁 즈음 기도원을 떠났다. 다행히 도로사정이 나쁘지 않았다. 갑자기 요셉이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눈이 엄청 왔어요. 나 눈사람 만들고 싶어요. 같이 만들어요.” 눈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생긴 것 같다. “아들이 좋아하는 눈, 같이 눈사람을 만들 수 있는 눈” 집으로 돌아와 놀이터에 있는 아들을 불렀다. 장갑을 끼고 같이 눈을 굴렸다. 아들과 함께 하는 눈은 흐뭇했다. 요셉이는 눈에 대한 낭만을 오래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