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은 짧았다. 정확히 표현하면 갑작스러웠다. 물론 설이 2월 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다가오니 급해졌다. 갑자기 식당을 예약하고, 준비할 것들을 나누고, 모임 날짜를 컨펌하고...
몇 개월만에 가족이 모였다.. 그새 조카들이 많이 변했다. 대학 입학한 장남은 공대생 냄새가 많이 풍긴다. 큰 조카는 벌써 대학원 졸업이다. 요셉이 동갑내기는 이제 수능 모드에 들어섰다.
저녁을 먹고, 모닥불 앞에 앉아 불멍을 하다가, 집에 돌아와 세상 얘기를 시작한다. 명품백 사과는 언제 할 건지... 의대 정원은 왜 갑자기 늘리는 건지... 산학기관 연구비는 왜 반토막을 냈는지...
나이를 먹으니 말이 많아진다. 그래도 오랜만이다. 가족이 함께 대화를 한 것은... “삼촌, 치킨 먹지 않을래요?” “난 숯불 아니면 안 먹어.” “좀전에 밥 먹고 왔잖아?” “그럼 두 마리만 시킬게요.” 30분 후 벨이 울린다. 방콕하던 꼬맹이들이 나온다. 그리고 순식간에 없어졌다. 순살치킨이라 뼈조차 없다. “말을 많이 했더니 배가 고픈가 봐요.”
그리고 다음 날, 후딱 세배 모임을 하고 얼른 봉투를 돌렸다. 아침은 브런치 카페... 파스타에, 베이커리에, 아메리카노에... 긴 테이블에 둘러앉아 또 대화를 시작한다. “너는 언제 연애할 거니?” “관심 없어요.” “요셉이는 연락이 오나요?” “급할 때만 받더라;;”
시간이 다 되었다. 레스토랑에서 나와서 큰 형은 공항으로, 작은 형은 지방으로, 나는 부모님 모시고 집으로 향했다. 부담 없는, 그리고 기분도 좋은, 그래서 아쉽기까지 한 명절 모임이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여러 번 부딪힘이 있었다. 그래서 내려놓음이 있었다. 결국 여러 과정 끝에 오늘이 왔다. 아쉬움이 남을 만큼 짧고, 다음이 기대될 만큼 긴 여운의 명절...
아내와 예지를 데리고 교회로 향했다. 벌써 청소를 시작하신 전도사님들... 세차게 바닥을 밀고 의자를 닦은 후 카페에 모여 차를 마신다. 짧지만 보람찬 설... 기분 좋다. 벌써 새해 복을 다 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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