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를 하면서 싫어하는 한자가 생겼다. 바로 “虛(빌 허)”자이다. 허세, 허수, 허풍, 그리고 허위, 허무까지... 이런 류의 단어는 하나 같이 징글맞다. 아무래도 알러지가 생겼나 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목회 생활을 하면서 이 단어로 인해 피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부목사 시절, 담임목사님께 보고할 때마다 갈등이 있었다. 바로 주일통계 때문이었다. 출석체크 후 총합이 나오면 얼마를 플러스해야 할지 고민했다. 있는 그대로 보고하는 것이 당연할텐데 그러지 못했다. 전임행정목사들이 이미 숫자 뻥튀기를 많이 해놓았기 때문이다.

고민하다가 목사님께 솔직히 말씀드렸다. 허수가 있다고... 그리고 정확한 숫자를 말씀드렸다. 믿지 않으셨다. 불쾌해하셨다. 얼마 후 교회수첩을 만들었다. 교적부가 너무 허세라 실인원을 바탕으로 편집했다. 결국 그 수첩은 발행될 수 없었다. 목사님이 막으셨다.

이름 몇 개 더 얹어 놓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虛(빌 허)의 최후를... 그때는 좋아도 그 끝은 허무하다. 결국 아무 것도 도움이 안 되는 허위로 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많은 교회들이 虛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虛를 이용해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그것을 끊어내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소한 욕망 때문이라고... 虛는 처음부터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虛가 實을 넘어설 때 문제가 생긴다. 사소함이 중대으로 변해 버린다.

여기에는 신분지위고하와 관계없다.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한 사기꾼의 이야기가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웃음밖에 안 나오는 이 사건에 피해자는 불특정 다수였다.

신앙은 현실을 외면할 때 망상이 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난 곳은 허세 쩐 왕궁이 아니라 밑바닥 광야였다. 현실은 고되다. 힘들다. 하지만 거기에 은혜가 있다. 虛가 아닌 實,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