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의 일이었다. 바람이 분 것도 아니다. 거세게 비가 내린 것도 아니다. 어제까지 아무 일 없던 나무였다. 그런데 새벽녘 교회에 도착했을 때 가지 같은 잎사귀들이 앞마당 위에 흩어져 있었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새벽공기가 갑자기 겨울 같이 차가워졌고, 조용히 가을비도 내렸다. 장롱 깊이 쟁여놓았던 코트도 꺼냈고, 안 매던 스카프도 둘렀다.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기별도 없이 떨어질 줄 몰랐다. 최소한 사인은 줄줄 알았다. 떨어진 솔잎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안녕, 올해는 여기까지... 내년에 또 보자고...”

계절의 변화는 나보다 이 나무가 훨씬 전문가였던 거다. 스마트폰이나 첨단계측기는 없을지라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일을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풍요의 시간이 끝나갈 즈음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마음먹고 있었던 거다.

낙엽을 보며 감상에 젖을 만큼 한가한 사람은 아니지만, 오늘따라 이 그림이 더 깊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처한 지금 때문이겠다. 새해 계획을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모으고, 독서를 하고 있다. 희망찬 무언가를 끌어내고 싶지만, 사실 우리의 내년은 그리 밝지 않다.

1%대 경제성장률, 10%를 바라보는 금리, 중국경제의 이상신호, 그리고 새롭게 시작된 전쟁까지... 더구나 한국교회는 하향세가 가속되고 있다. 그렇다. 풍요의 시간은 이미 지나버렸다. 우리도 어쩌면 잎을 떨궈야 하는 시기가 올지 모른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영적 겨울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흩어진 나뭇잎처럼 갑자기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새 시대를 위한 새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마치 잎을 모두 떨군 나무가 새봄 새순을 품어가듯이, 우리 역시 소망의 씨앗을 가슴에 품을 때가 되었다. 찬기가 들지 않도록... 바람에 떨지 않도록... 뜨거운 마음으로 소망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나무를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수고했어. 내년에 꼭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