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앞마당에 장미나무가 피었다. 작년까지는 분명 복숭아나무였었는데 장미꽃이 만개한 장면을 보고 누가 바꿔 심어 놓은 게 아닌지 잠시 의심하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장미는 나무가 될 수 없다. 장미는 덩굴로 자랄 뿐이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았다. 아뿔싸, 장미꽃이 담장을 넘어 복숭아나무를 빨갛게 물들인 것이었다.

올 초에 주차장 진입로 공사를 하면서 나무 위치를 옆으로 옮겨 심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런 흥미로운 그림을 만들게 될지 그땐 몰랐다. 예측하지 못한 의외의 작품이 탄생한 셈이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교회 앞마당에 앉아 장미나무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마음속에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장미나무인가? 아니면 복숭아나무인가?” 복숭아나무는 장미로 물들 수 있고 벚꽃 잎이 날릴 수도 있다. 하지만 복숭아나무는 복숭아꽃을 피워야하고 복숭아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러니 복숭아나무다. 붉은 넝쿨에 취해 자신의 본분을 잊고 장미나무인양 사는 것은 멍청한 일이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삼상 15:17a)

사울의 패망은 이미 예고된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시작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도, 전쟁의 영웅이 된 것도 하나님 때문이다. 그는 사실 작은 자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승리에 취해 인기에 취해 그리고 권력에 취해 본래의 모습을 망각하였다. 당연한 겸손을 잃고 패망의 아이콘이 되었다.

지난 몇 개월간의 삶이 장미넝쿨에 취해 본분을 잃고 살았던 게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본분과 기본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반성이 꿈틀거렸다. 아니면 사울 꼴 난다. 멍청한 장미나무가 된다. 은혜는 까마귀도 기억하는 잊지 말아야 할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