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라는 말은 우리 신앙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말이다. 우리가 찬양으로 자주 고백하는 것처럼 나를 지으신 이가, 나를 부르신 이가, 나를 보내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은혜였기 때문이다.

은혜가 은혜인 줄 아는 믿음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커지고 깊어진다. 반면 은혜가 당연한 거라 여기면 믿음이 작아진다. 불평불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실수들을 저지르게 된다.

은혜결핍신앙... 누가 그런 실수를 하겠는가 싶지만, 생각보다 많은 교인들이 이 늪에 빠진다. 심지어 여러 번 같은 실수를 하는 분들도 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왜 그랬는지 복기해보면 열심이 욕심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보다 사람이 더 크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끝이 정말 비극이었다. 웃음도, 넉넉함도, 또 주위에 사람도 없었다. 쌓인 일들과 복잡한 심경과 씁쓸한 관계만이 있었다.

그래서 2023년은 교회에게도 내게도 매우 위험한 한해가 될 수 있다.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고, 이뤄야 할 일들이 크기 때문이다. 정신 줄을 놓아버리면 아마 올해 끝에 그때 그 비극을 다시 경험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하루하루 은혜로 살기로... 조금 어설프고 조금 모자랄지 몰라도 은혜를 다른 것과 바꿔 먹지 않기로 결정했다.

특새 준비를 시작했을 때 이미 비슷한 느낌이 왔다. 쌓인 일들과 복잡한 심경이 마음 한구석에 자라고 있었다. 잘하고 싶은 욕심들이 생각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뭘 위해서... 뭐 하려고...?’ 그리고 은혜를 제로베이스로 삼고 다시 한 구절 한 말씀 되짚기 시작했다.

잘했는지 잘 마쳤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나에게만큼은 은혜롭게 했다. 마지막 찬양을 부르고 마음이 뭉클해졌다.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사역자들과 함께 아침을 먹는다. 썰렁한 농담(?)을 하면서 내리는 빗방울 보고 있다. 은혜, 그래 은혜의 단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