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남자들이 그렇겠지만 나에게 군대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얘깃거리이다. 좀 더 정확히 정의한다면 ‘애증’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고 추억하기 싫지만 자꾸 입에 오르는 군대이야기... 군대가 남자들의 애증인 이유는 그곳에 우리의 바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군 입대 후 처음 접하게 된 힘겨움은 낯선 사람들과의 동거였다. 전국 각처에서 올라온 성씨도 말씨도 다른 사나이들이 한 내무반에 모여 3년을 함께 한다. 그중에는 스타일이 다른-정말 같이하기 싫은-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미 전우라는 이름으로 뭉쳐 있기 때문이다.

군대 3년은 어떻게 이들과의 다름을 이겨내는가에 성패가 달려있다. 잘 극복하면 소위 ‘모범 사회인’으로 인정받는다. 실패할 경우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힌 채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다. 지나보면 참 싫었다. 하지만 필요한 시간이었다. 성품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버티는 방법은 배웠다.

군 생황에 익숙해질 때쯤 다가오는 어려움은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이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이 같은 말 그대로 ‘무한반복재생의 나날’이 시작된다. 이와 같은 일상은 블랙홀과 비슷하다. 사회에서 대학을 다녔든 공장에 다녔든 제대할 때쯤이면 하얀 도화지로 변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우리를 귀찮게 하는 것이 있다.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알 수 없는 작업들이다. 처음에는 왜 이것을 하는지 질문을 품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질문은 사라지고 의무만 남는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면 좋은 훈련이었던 것 같다. 일상을 지켜내는 성실함을 배웠기 때문이다.

비약일지 모르나 교회생활도 군 생활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항상 새롭고 싶은 욕구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반복되는 일상을 만나게 된다. 가려 만나고 싶어도 나와 다른 교우들과 불편한 동거를 하기도 한다. 결국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 필요한 덕목은 ‘성실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군대와 다른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주님 때문에 반복되는 일상을 견뎌낸다. 천국의 소망이 있기에 보람을 찾게 된다. 아마 이 세상을 제대할 때쯤 이렇게 고백할 것이다. “천년 같은 하루, 하루 같은 천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