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이번 여름엔 어디로 다녀오실 거예요?” 매년 이맘때면 교우들에게 듣는 인사다. 담임목사의 휴가를 궁금해하는 이유는 여럿이 있겠지만, 같은 곳을 가지 않는 습성과 어떻게든 싸게 가려는 궁상이 가장 큰 이유다. 그래서 진짜 휴가지 자체에 관심을 두는 분이 많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힘들 거 같아요. 손이 이래서요.” 하필이면 손가락에서 핀을 뽑는 날이 8월 말이다. “그냥 9월에 조용히 다녀오려구요.”

올해는 사실 아이들과 헬 하이킹-지옥체험-을 다녀오려고 했다. 스마트폰, 유튜브,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자연을 벗 삼아 “왠종일 걷기”를 계획했다. 거리두기 방역이 그치고 나서 남들 다 떠나는 한풀이 여행이나 묻지마 여행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그건 여행이 아니라 노동 내지는 일탈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장소는 두 군데로 압축되었다. 제주도 올레길 아니면 청산도 슬로길... 예지에게는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낭만적인 길이라고 꼬셨고, 요셉에게는 인생에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될 거라고 뻥 쳤다. 하지만 그곳에는 오로지 걷기만 있을 뿐... 아이들에게 원초적인 고생을 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가족이 함께 무엇을 성취하는 기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오빠, 나는 못 걸어. 그렇게 알아.” 하지만 아내는 초장부터 반대했다. 그리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골절 사고까지... 결국 모든 것을 9월 이후로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다시 원점이 된 셈이다.

두 가지 깨달음이 밀려온다. 첫째로, 의욕이 앞서면 일을 그르치기 쉽다. 둘째로, 뻥 치면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ㅠㅠ;; 결국 이번 여름은 독서와 에어컨으로 견디기로 했다. 서점을 뒤져 읽을 책들을 한 뼘 쌓아놓고 리모컨을 들어 28℃에 맞춰놓는다. 그래도 모니터 한쪽에는 올레길 지도와 슬로길 풍경을 저장해놓았다.

이번엔 아이들을 진실하게 설득하여 자발적인(?) 가을 하이킹을 떠나야겠다. 그리고 여름내 방구석에서 추억을 만들만한 일들을 만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