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우리 교회에 처음 방문하던 날, 면접관으로 오신 1대 목사님이 대뜸 이런 질문을 하셨다. “집에 책장이 몆 개나 있나요?” 뜬금없는 질문의 이유는 “목사는 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총신의 신념 때문이었다. 목사에게 필수적인 삼방(책방, 심방, 골방) 중 책방이 가장 쉽고도 기초적인 목사의 소양이라 판단하셨기 때문이다.
부교역자의 삶은 이사와의 싸움이다. 나 역시 격년마다 이사를 다닌 통에 짐 싸는 것이 항상 골치 아픈 숙제였다.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이사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많은 경우 평수가 줄거나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짐을 풀지도 못하고 다시 이사를 하는 웃픈 상황이 벌어졌다. 산삼처럼 묵혀놓은 짐이 생겼는데 그 대부분 “책”이었다.
그래서 이 집에 이사 오면서 제일 먼저 찾았던 것이 서랍형 책장이었다. 부피가 크다고 아내가 반대했지만,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다. 마음 놓고 책을 꽂고 빼고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설치를 마친 후 산삼 같은 짐을 풀어 책장을 정리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책장이 부족했다. 어쩔 수없이 많은 책을 버리고 말았다.
나는 누구처럼 가득 채워진 책장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한번 산 책을 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 후로 필요한 책만 사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래도 책은 쌓여만 갔다.
책꽂이 윗공간에 쑤셔 넣다가, 그래도 안 되어 책상 위, 책상 옆에... 결국 침대 머리 위에까지 책들을 쌓기 시작했다. 급기야 자다가 책 벼락을 맞는 상황이 벌어졌다. 더 이상은 놔둘 수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책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
어디 책뿐이겠는가? 내 삶에, 나의 일상에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것이 좋은 의도라 할지라도 과한 것은 짐이 될 수 있다. 언젠가 벼락처럼 쏟아질 수 있다.
봄이 왔다. 봄은 정리하는 시간, 그래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책장을 정리하듯 삶을 정리해야겠다. 책 벼락이 아닌 은혜가 내 영혼에 내리도록 마음을 비워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