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11, 1, 3... 이 알 수 없는 숫자의 배열은 나를 긴장시키는 압박이다.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격월로 피를 뽑고, 가끔 소변 채취하고... 지난 1월에 이어 3월 역시 상태가 좋지 않다. 의사 선생님 왈 “당수치가 좋지 않아요. 봄이 됐으니 식단 조절하시고 다시 운동을 시작하시죠.”

그렇다. 봄이 왔다. 다시 관리를 시작해야 하는 봄... 다시 풀떼기를 뜯고 주전부리를 멈추고 천변을 걸어야 한다. 대충 예상은 했다. 얼마 전부터 눈이 더 흐려졌다. 한 시간 책을 보면 십 분은 쉬어야 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네, 그러겠습니다. 조심할게요.”

약이 두 알 더 늘었다. 이것저것 챙겨 먹는 건강보조제를 합치면 열 알은 되겠다. 마음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하지만 자업자득... 돌이켜보면 스트레스를 핑계로 음식을 가리지 않았다. 좀 지치기도 했고, 사역을 핑계로 소홀히 했다. 그러나 건강은 언제나 영수증이다. 쓴 만큼 나빠지고, 모은 만큼 나아진다. 그리고 정산할 때가 되면 항상 나를 놀래킨다.

가끔 설교 때 얘기하지만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하지만 아픈 건 정말 싫다. 아파본 경험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아프고 삶이 불편해지는 것을 알기에 이를 감당할 용기가 부족하다. 그래서 이렇게 나쁜 영수증을 받게 되면 괜히 축 쳐진다. 이유 없이 속상하다.

월요일 하루, 핸드폰을 던졌다. 침대에서 내려오질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암 선고를 받은 후 항암치료를 견디면서 매일 새벽 말씀묵상을 SNS에 올리시는 목사님의 영상이었다. 가장 힘드셨던 시기인 듯했다. 머리에 비니모자를 쓰고 마른 입을 삼키면서 차분히 말씀을 전하고 계셨다. 영상을 보는 내내 마음이 찔렀다.

설교자의 진짜 설교는 강단에서 내려온 뒤부터라는 말이 떠올랐다. 백 마디 말보다 한 가지 실천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참 초보인 듯하다. 그나마 은혜로 강단을 지키고 있다. 흐려진 초점을 모은다. 그래, 또 처음부터 다시... 갈 길은 멀지만 포기하지 않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