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영화관을 다녀왔다. 입에는 KF94마스크, 손에는 손소독제, 그리고 사람이 없는 시간을 택해서 극장에 올라갔다. 예상은 했지만 한산 그 자체였다. 관람객도 없었지만 티켓부스 직원도 없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영화관에도 불편한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열심히 키오스크와 씨름하고 티켓을 건졌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한국영화인데 소말리아 내전 사태를 다룬 내용이었다. 사실 감독의 전작 때문에 시원한 액션을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랐다. 재난영화에 가까웠다. 한국대사관 직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쟁 탈출기였다.
관람 내내 아침에 본 뉴스와 중첩이 되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시간과 공간만 달랐지 비슷한 일이 아프간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잔인한 반군과 무책임한 정부군,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통당하는 국민들...
탈출하는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목숨을 건다. 그렇게 올라탄 비행기 안은 발 딛을 틈이 없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었다. 우리도 같은 일을 겪었다. 70년 전 1·4 후퇴 흥남부두가 다시 재현된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무책임한 처사를 비난하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그렇게 단순한 얘기만은 아니다. 미군이 철수한 가장 큰 이유는 “막대한 전쟁비용과 전방위적인 부패”였다.
브라운대학 왓슨연구소에 따르면 20년 아프간 전쟁 동안 들어간 비용이 2,600조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비용에 반해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정치인과 군부의 부패가 감당 못 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프간이 몰락한 것은 탈레반이 잘해서가 아니라 지도자들이 못해서 그런 거다. 싸워보기도 전에 이미 승부가 끝나버린 것이다.
가장 염려되는 것은 탈레반의 폭정에 시달리게 될 아프간 여성들과 그리스도인들이다. 벌써부터 자극적인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마음이 참 무겁다. 무엇보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그리고 우리를 돌아봐야겠다. 우리 공동체가 같은 실패를 겪지 않도록 근신하고 힘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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