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걸 쓰라고 했어. 팔이 너무 아프잖아.” 아내가 장난치듯 투정을 부린다. “그래? 생각보다 많지 않을 텐데” “아니야. 한번 써봐. 만만치가 않아.”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성경필사를 생각한 건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아서였다. 코로나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은 터라, 그래도 뭔가를 찾은 것이 필사였다. 마침 베드로전서를 묵상하며 얻은 감동들이 있었다. 그 감동을 교우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성금요일... 배를 비우고 마음을 채우기 위해 금식과 성경필사를 시작했다. 글씨가 잘 나가는 펜을 찾았다. 돋보기를 쓰고 성경을 펴고 한 줄 한 줄 받아썼다. 조금 지나서 아내가 옳았다는 걸 알았다.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손이 무거웠다.
말씀준비는 컴퓨터로, 문자는 핸드폰으로, 급한 일은 전화로... 돌이켜보니 글씨를 쓴 지가 참 오래되었다. 심지어 묵상이나 떠오르는 감상도 개인 카톡에 올린다. 디지털에 일상을 잠식당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다시 아날로그로, 손 글씨로 돌아간다는 것은 특별할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한 자 한 자 눌러쓰는 손 글씨가 의외의 묘미를 선물했다. 머리 대신 손이 아픈 게 나았다. 말 대신 마음으로 읽는 게 좋았다. 가끔씩 멍해지기도 했지만 쉼표를 찍는 것 같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손을 멈추게 만드는 성경구절... 다시 읽고는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았다.
돌아보면 너무 빠르다. 가만히 있는 것이 바보처럼 느껴질 만큼 세상의 속도는 미쳤다. 마치 뚝뚝 끊기며 중간을 뛰어넘는 디지털처럼 우리 인생에 맥락이 사라지는 것 같다. 그만큼 여유도 느긋함도 사라진다. 편안치 않은 밤과 평안치 않은 삶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최소한 믿음은 속도가 아니다. 오히려 방향이다. 그래서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 속도에 미혹되어 방향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사가 옳았다. 멈추고 찾을 수 있기에...
이제 마지막 구절을 쓴다. 그리고 다시 첫 구절을 쓴다. 내 마음 위에 “다시 신앙 1일”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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