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구를 좋아한다. 1982년 봄, 동대문야구장에서 프로야구 첫 경기가 시작한 이후로 쭉 야구를 좋아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어머니를 억지로 졸라서 야구 글러브를 구했다. 살림살이가 힘들 때인데도 글러브를 포기하지 않은 것을 보면 정말 좋아했던 것 같다.

글러브를 들고 매일 동네 공터에서 야구를 했다. 딱히 배운 건 없지만 TV중계를 보고 곧잘 흉내를 냈다. 그때 내 롤모델은 단연 박철순 선수였다. 아마 내 연배 사내들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훤칠한 키에 다이내믹한 투구폼, 그리고 가끔씩 뿌려대는 너클볼이 정말 멋있었다. 너클볼을 따라한답시고 야구공을 쥐어짜다가 손톱이 부러진 적도 있다.

박철순 선수는 대단했다. 지금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22연승을 했다. 지금처럼 로테이션도 없었고, 탄탄한 불펜도 없었다. 한 경기에 100구 이상을 던지는 것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박 선수는 지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투혼이었다. 이에 힘입어 OB베어스는 원년 우승을 했다.

하지만 박 선수에게 큰 시련이 닥쳐왔다. 심각한 부상을 당한 것이다. 몇 차례에 걸친 재수술과 끝도 없는 재활과정... 그의 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정작 상황은 암담했다. 사람들은 그의 전성기가 끝났다고 말했다. 몇 년 후 마운드에 서긴 했지만 또 다시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그의 야구인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95년 한국시리즈에 나타난 그는 무너지는 마운드를 지켰다. 그 후 박 선수에게 별명이 생겼다. 불사조... 꺾인 날개를 부둥키며 다시 창공을 날아오르는 전설이었다.

최고령 세이브, 최고령 승리투수... 97년 마지막 마운드에 섰을 때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의 기록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이겨낸 불가능 때문이었다. 그즈음 국민들 역시 IMF라는 불가능 앞에 서있었다. 박 선수가 부상을 이겨냈듯 한 마음이 되어 위기를 극복했다.

지금 우리는 다시 불가능 앞에 서있다. 솔직히 답답하고 막막하다. 그러나 다시 공을 잡는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 신앙인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