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은 유독 길었던 것 같다. 좋은 말로 표현하자면 여유로웠다. 별내 부모님 집에서 모이는 바람에 오고가는 길 위에 버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부터 집합한 이유로 다른 명절에 비해 넉넉하게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런데 너무 넉넉하였다. 우리 집은 다른 집처럼 아기자기하지 못하다. 그 흔한 가족고스톱 한번 친 적이 없고 윷놀이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모여서 할 수 있는 아이템이 몇 개 되지 않는다. ‘1번 음식 준비하기, 2번 먹기, 3번 TV보기, 4번 마트가기...’ 선택사항이 얼마 되지 않아 먹거나 자거나 하면서 3일을 보냈다.

장인장모님께 설 인사를 드린 후 월요일 밤 늦게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화요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데도 가지 않고 그냥 집에 있었다. 달라진 것은 앓던 잇몸병이 나았고 기침감기가 사그라진 것이다. 신기한 것은 자도 자도 잠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로한 느낌도 가시지 않는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미안한 마음으로 손수 떡볶이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좋아했다. 이내 냄비에 바닥이 보였다. 그렇게 저녁을 때우고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채 30분이 되지 않아 피곤해졌다. 잠시 누운 것이 늦은 밤이 되어버렸다. 묘한 허무함이 밀려왔다.

돌아보니 쉰 것 같으나 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족들과 함께 있었으나 함께 있지 않은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무슨 이유일까 고민하다가 마음이 고장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는가가 중요한 의미일텐데 나의 마음은 달려가는 것에만 그리고 이루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것 같다.

갑자기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게 비뚤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교회를 위해서 교우를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하나님과의 친밀함과는 상관없는 내 열심에 도취된 것은 아닌지...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사역’이 아니라 ‘사랑’이다.

힘들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최소한 아이들과 하루에 한 시간은 같이 있어야겠다. 주님과는 매 시간 함께 해야겠다. 안되면 또 다시 시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