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이 넘도록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신앙의 연수가 곧 신앙의 깊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고 식당 개 삼년이면 라면을 끓일 수는 있다. 하지만 풍월을 읊는다고 모두 선비는 아니며 라면을 끓이게 되었다고 셰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활동을 하면 교회문화에 익숙해질 수 있다. 하지만 능숙한 교회생활이 깊은 영성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 쉽게 가장하고 너무 잘 포장한다. 두터운 껍질 안에 부실한 알맹이가 있는 법이다. 스캔들 제조기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한국교회가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이러한 탓에 나는 좀 심하리만큼 격식과 겉치레를 싫어하는 편이다. 위선을 피하고 싶은 강박 때문이다. 자기기만의 유혹으로부터 마음을 지키기 위한 편법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성향 때문에 주위로부터 자주 오해를 산다. 예의가 없거나 호의가 없는 사람으로 여겨져 불필요한 공격을 받을 때가 많다. 때로는 뜻하지 않게 상처를 줬던 경우도 있다.

진실한 것은 물론 좋은 것이지만 지나친 진실함은 무례함이 된다. 예의로움 역시 바람직한 것이나 영혼 없는 친절은 상처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방향성과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 하나님을 향한 존전의식과 영혼을 향한 긍휼함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실수는 할 수 있어도 실패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믿음의 진보이고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풍월을 읊어도 라면을 끓여도 흉내 낼 수 없는 ‘뿌리 깊은 신앙’ 말이다. 복잡한 것 같지만 실상은 단순하고 대단한 것 같은 실제로는 소박한 ‘순수 믿음’인 것이다.

위대한 화가의 그림들을 살펴보면 나이가 듦에 따라 화풍이 점차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다. 작품초기의 거친 선들이 후기에 이르러 몇 가닥의 붓 터치로 정리되고 복잡한 색감들은 단순한 채색으로 변한다. 이 같은 변화는 성장을 위한 진통 끝에 나타나고 위대한 작품의 배경이 된다.

올해 삼일교회는 30주년을 맞이한다. 이제는 대작을 그릴 때가 왔다. 복잡한 헤아림을 내려놓고 단순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뿌리 깊은 교회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