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사람들에게 절대 보여주기 싫은 사진이 있다. 대학시절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한때 장발장(?)이었다. 머리를 두 번 길렀다. 대학교 1학년 때, 그리고 제대 후 복학 때... 음악을 한답시고 길렀지만, 실은 오기로 그랬다. 그땐 머리모양만큼 성격도 보통이 아니었다. 말은 짧고, 기복이 심했다. 수틀리면 한 달 이상 잠수를 탔다. 친구들은 예술 하는 애라 그런 거라 말했지만 사실 아니었다. 늘 꼬여있었다. 자주 화가 나있었다.

예수님을 만나고 모난 성격이 조금씩 다듬어져갔다. 하지만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억울함을 참지 못하는 나... 사람이 두려운 나... 그런데 하필이면 목회자가 되었다.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많은 일들을 참아내야 하는 직업이니 당연히 어울릴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20년째 목회자로 살고 있다. 기적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친구목사와 통화를 했다. 마음에 앓고 있던 이런저런 얘기를 꺼냈다. 내 얘기를 듣고는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담임이라 다르군. 변했네. 변했어.” “뭐가 어떻게 변했길래?” “옛날 같으면 치받았지.” “내가 그렇게 더러웠냐?” “모르냐? 하나님 은혜지.” 서로 크게 웃었다. “긍휼히 여겨. 소망을 잃지 말고... 주님이 우리도 목사로 세워주셨잖니?”

친구 말이 맞다. 하나님이 나를 목사로 세우신 이유는 사람 만들려고, 사람 만들라고 그러신 거다. 그래서 머리 기르고 기타가방 메고 녹음실을 전전하던 내가... 외로움에 무너지고 암담함에 잠수 타던 내가 사명을 알게 됐다. 사역자로 섰다. 그리고 지난 20년 사역기간 동안 몇 번을 쓰러지고 포기할 수 있었음에도 다시 일으켜주셨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막상 살다보면 이 은혜를 잊는다. 20년 전 그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힘들다. 옹졸해진다. 기억상실 개구리가 된다. “나의 작음을 알고 그분의 크심을 알며 소망, 그 깊은 길로 가기 원하네.” 신앙은 어차피 나의 길을 버리는 것이다. 주님 좇아가는 것이다. 한번 나선 이 길, 돌아설 필요는 없다. 가던 길 끝까지 가자. 주님 만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