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버지가 최신 TV 한대를 들고 오셨다. 살림이 넉넉지 않았는데도 TV를 사오셨다. 매일 옆집 TV신세를 지는 철없는 막내가 마음에 걸리셨을지 모른다. 계산이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몰랐다. 좀 싸우셨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집에서 TV를 보게 된 것이 너무 좋았을 뿐이다.

형들과 나는 매일 만화를 보았다. 아버지는 주로 뉴스를 보셨다. 특별히 아버지가 빼놓지 않고 보는 드라마가 있었다. 바로 “수사반장”이었다. 트렌치코트를 입고 담배를 입에 물고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반장... 아버지 덕에 매주 멋진 반장님을 볼 수 있었다. 세상에 나쁜 놈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반장님이 매주 잡아넣어도 범인들은 그치지 않았다.

기억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바로 “돈세탁사건”이다. 검은색 종이를 약품에 넣어 씻으니 백 달러짜리로 바뀐다. 이런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외국에 있어서 탁송료와 약품처리비용을 필요하다고 했다. 투자하면 두 배를 주겠다고 말했다. 사기였고, 사기꾼이었다. 꾀임에 넘어가 재산을 날려먹은 사람들이 수사반장을 찾아왔다. 반장님은 트렌치코트를 날리며 지폐사기꾼들을 모두 잡아 감옥에 처넣었다.

“왜 저런 것에 속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바보 같았다. 그런데 지난 주 재밌는 기사를 발견했다. 라이베리아인이 벌인 일명 “그린머니사건” 검은 돈이 녹색 돈으로 변했다. 범인이 아프리카인으로 바뀌었다. 수법도 똑같고, 당한 이유도 비슷했다. 단지 시간이 지났을 뿐이고, 금액이 늘었을 뿐이다.

어릴 적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를 지금은 안다. 같은 사기, 같은 실수에 넘어가는 이유는 우리의 욕망과 약함이 똑같기 때문이다. 교인들을 상담할 때마다 자주 느끼는 것은 있다. 많은 분들이 비슷한 시험에 다시 빠진다는 것이다. 이미 당했지만 아직 벋어날 수 없는 이유가 뭘까? 욕망을 내려놓지 못하고, 약함을 돌아보지 못하지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난 비슷한 시험 앞에 있다. 이젠 이 못난 시험의 고리를 끊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