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앓아누웠다. 나아지던 감기가 기침으로 변하더니 독감이 되었다. 병원 가기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이 링거주사를 맞고 왔다. 그날부터 집안은 야전병원이 되었다. 예지도 열이 나서 누웠다. 나조차 콧물감기가 왔다. 시베리아에서도 안 걸리던 감기가 한국에 와서 걸릴 줄이야.;;

“누구야 병원(病原)이?” “나는 아니야.” 멀쩡한 요셉이는 웃는 듯 지나간다. “목을 감고 다니라니까~” 아내가 대꾸 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아빠, 아프니까 선물 사죠.” 아픈 게 벼슬인 예지는 철없이 졸라댄다.

주일강단이 걱정이 되어 이비인후과에 갔다. 독감인지 여쭤봤더니 다행히 아니란다. 내친 김에 밀어놓았던 정기건강검진을 받았다. “위가 깨끗하네요. 아무 이상 없습니다.” 초장에 감기를 쫓아낼 심산으로 초저녁부터 침대에 누워버렸다. 꿈을 꿨다. 강단에서 서서 교회소식 전했다. 시베리아선교에 대해 얘기하기도 하고, 화장실 수도문제도 말했다. 매번 주일을 앞두고 긴장하고 꿈을 꾸지만 자면서 광고하기는 처음이다.^^;;

눈을 떴다. 새벽 1시... 적막함 속에 시계소리만 들린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이틀 지나면 새해다.’ 당황한 마음에 책상 옆에 쌓아놓은 책 한권을 읽어 내린다. 하지만 곧 멈춘다. 이게 아닌 것 같았다. 결국 하나님께 엎드렸다. “주님, 내 마음을 돌아보소서.”

올해도 역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목회가 원래 그런 것 같다. 하루를 일 년 같이, 일 년을 하루 같이 사는 게 목회 같다. 올해 역시 감당하지 못할 일들을 감당하며 지냈다. 에벤에셀, 하나님의 은혜... 주님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우리 교인들이 아니었다면 중도에 포기했을지 모르겠다.

못하는 게 너무 많아 잘 못사는 목사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 하신다. 큰 은혜를 증명이라도 하시듯 나를 붙잡으셨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잊지 않게 해주세요. 그게 저의 소원입니다.” 12월의 끝 토요일, 이렇게 은혜로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