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역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식탁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나는 단연코 첫 번째 추수감사절 식탁이라고 말할 것이다. 초보 이민생활에 힘겨워 하던 첫해 담임목사님께서 우리 부부를 댁으로 초대하셨다. 가지런히 정돈된 식탁보 위에 푸짐하게 차려진 추수감사절 음식들, 그리고 테이블 중심을 지키고 앉은 큼지막한 칠면조 구이는 미국드라마에서나 봄직한 그림 같은 식탁이었다.

미국에 가기 전 나에게 추수감사절은 강단에 과일을 올려놓는 날, 예배 마치고 떡 받아가던 날 정도로 기억된다. 하지만 막상 미국에서 경험한 추수감사절은 우리의 추석보다 더 성대한 명절이었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은 말 그대로 ‘가족의 날’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사하기 위해 대륙 간 이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추수감사절이 이토록 간절한 이유는 감사절에 얽힌 눈물겨운 사연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고향을 떠나 낯선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매서운 추위와 싸워야 했다. 비록 신앙의 자유를 얻었을지 모르나 죽음의 위협 앞에 서야했던 그들은 정착을 위해 혹독한 대가를 지불했다. 102명 가운데 44명이 목숨을 잃었다. 남겨진 사람들은 죽음과 같은 암담한 현실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맞이한 이듬해 봄, 이들을 지켜보던 인디언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옥수수를 가져다주고 농사짓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첫 농사는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열매 맺었다. 청교도들은 인디언들의 친절에 보답하고자 정성스럽게 식탁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수확의 기쁨을 나누었다. 이것이 ‘첫 번째 추수감사절’이었다.

추수감사절은 따뜻한 식탁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청교도들에게는 눈물의 식탁이었고, 친절의 베푼 인디언들에게는 감사의 식탁이었다. 이번 추수감사주일은 우리 교회에서도 따뜻한 식탁이 재연될 것 같다. 고된 인생을 살아가는 이웃들을 사랑으로 격려하고, 교우들이 함께 주의 은혜를 감사하는 행복한 식탁이 될 것 같다. 하나님 품 안에서 잠시라도 마음을 녹이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아름다운 일들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