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덥던 여름이 언제였는지 싶게 새벽공기가 쌀쌀하다. 가을이다. 쾌청한 가을하늘과 맑은 공기에 마음조차 상쾌하다. 가을이 오면 회룡역은 바빠진다. 산행을 준비하는 등산객들 때문이다. 울긋불긋 등산복을 입고는 삼삼오오 모여 사패산을 오른다. 우리 옆에 있는 저 산을 오르기 위에 두 시간 넘게 전철을 타고 오신 분도 있다.

예전 교회에서 청년들과 남산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한 시간을 올라 정상에 도착했을 때 예상 밖의 장면을 보았다. 남산구경을 하러 온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가까운 중국에서부터 멀리는 중동까지 세계인이 모여 있었다. 각자 자물쇠에 이름을 적고는 쇠그물에 걸어 놓았다. 한류스타 사진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정작 서울사람은 없었다. 점심 먹으러 산 밑 돈가스 집에 오는 직장인 정도가 전부였다. 남산의 푸른 공기와 서울의 아름다운 전경을 이방인들에게 양보한 셈이다. 그러나 아쉬움이 별로 없다. 서울에 살기 때문에 남산이 그렇게 소중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사람은 남산에 가지 않는다는 말이 맞았다. 의정부 사람은 사패산에 오르지 않는다는 얘기도 틀리지 않다. 마치 장롱에 깊이 박힌 결혼패물처럼 귀중한 것을 옆에 두고 누리지 않는다. 물론 이유는 있다. 바쁜 일상과 더 바쁜 마음 때문에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만큼 아까운 일이 없다. 좀 더 비약하면 바보짓이다.

나는 우리 교회, 우리 가족들이 남산이나 사패산이 되지 않았으면 싶다. 매주 만나는 교우들, 매주 드리는 예배, 매주 섬기는 봉사이지만 우리만 누릴 수 있는, 우리만 간직할 수 있는 소중한 가치들이다. 바쁜 일상과 더 바쁜 마음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보물들이다.

어릴 적 소풍을 갈 때마다 기다리던 시간이 있었다. 보물찾기... 매주 보물을 찾는 마음으로 교회생활을 한다면 또 다른 기쁨이 열리지 않을까? 이 기쁨을 양보하지 말자. “그때가 좋았어.”라고 후회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