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끈기가 부족한 아이였다. 적어도 철이 들기 전까지 그랬다. 물론 억울한 면도 있었다. 비교의 대상이 항상 형들이었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으면 도대체 일어나지 않는 큰형, 시험을 앞두고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작은형... 한참 나이가 어린 내게는 범접할 수 없는 천상계 캐릭터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이렇게 자주 말씀하셨다. “형들 보고 닮아라.”

그러나 어머니의 말씀대로 잘되지 않았다. 의자에 앉는 만큼 일어나기 바빴으며, 책 읽고 공부하는데 큰 재미를 못 느꼈다. 물론 못한 것은 아니지만 형들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다시 말씀하셨다. “니가 머리는 좋은데 끈기가 부족해서 그런 거야.”

그 말씀이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끈기는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은 거니, 마음먹고 하면 언제건 잘할 줄 알았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납득할 수 없는 성적표를 받고 난 후 크게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왔다. 끈기가 재능보다 힘이 세며,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제때 준비하지 못하면 대가가 따른다는 것도 경험했다.

대학을 가고, 음악을 하고, 실패하고... 몇 번의 굴곡 끝에 신대원에 입학했다. 그동안 미룬 공부를 다하는 듯했다. 벌을 받는 것 같았다. 하지만 희한하게 버텨냈다. 없던 끈기가 생겨서가 아니다. 끈기보다 강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꿈, 바로 사명이었다. 사명 때문에 열정이 생겼다. 열정 때문에 끈기가 생겼다. 그렇게 목사가 되었다.

사역 기간 동안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마음이 무너지고 몸이 무너졌다. 심지어 사명마저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나는 여기에 서있다. 끈기가 강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사명이 견고해졌기 때문도 아니다.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을 경험했다. 그것은 나를 향한 주님의 은혜였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

맞다. 은혜가 나를 있게 했다. 은혜가 나를 버티게 했다. 다시 맞이하는 추수감사절, 한해를 되새겨 본다. 한해가 은혜였다. 감사도 결국 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