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손가락 골절 때문에 휴가가 미뤄졌다. 더구나 고장 난 자동차를 좋은 곳(?)으로 고이 보내드리는 바람에 새 차를 기다려야 했다. 결국 여름 휴가는 가을 휴가로, 일주일 휴가는 사흘 휴가로 바뀌어야 했다. 먼 곳에 갈 수 없어서 가까운 동해로 행선지를 정했다.

“아빠, 대신 일찍 출발해서 바다에 먼저 들어갈래.” “그래, 나도 찬성!” 하지만 늘 그렇듯 이뤄질 수 없는 약속이었다. 아침 일찍 깬 것은 알람시계뿐이었다. 적당히 눈을 떠서 출발한 것이 낮 11시 정도였다.

“아빠, 배고파.” “그럼 휴게소에 잠깐 들려서 밥 먹고 가자.” 하지만 이 역시 헛된 바람이었다. 화장실 가고, 밥 먹고, 커피 먹고, 간식 챙기고... 늦은 체크인, 겨우 방을 잡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모두가 피곤에 잠겼다는 것... 안 되겠다. 오늘은 내가 우리 집 악역 배우! “지금 안 가면 나 혼자 딴 데 갈 거야.” 보람찬 휴가를 아이들을 협박했다.

억지로 한발 두발 끌려오던 놈들이 바다를 보더니 강아지처럼 뛰어든다. 하필 파도도 제법이라 마치 하와이 와이키키 같다. “안 추워?” “엉, 바다 안은 괜찮아.” “안 넘어지게 조심해. 동생 잘 보고...”

그렇게 하루, 이틀, 그리고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여보, 올라가는 길에 유리공예 체험하는 곳 들렸다가.” 오랜만에 아내 말에 순종했다. 두 녀석이 목걸이 하나, 키링 하나를 들고 나온다. “이제 올라가면 되지?”

강원도를 넘어 경기도에 들어섰다. 갑자기 예지가 큰 한숨을 쉰다. “강원도하고 경기도하고 공기가 달라. 아~ 갑자기 스트레스가 밀려와. 학교 가고, 태권도 가고, 학습지 하고... 매일 강원도에서 살고 싶다!”

생각해보니 나도 별반 다르지 않게 하나님께 투정하곤 했다. “주님, 지금 너무 힘들어요. 얼른 천국에 가고 싶어요.” 나이 오십이 넘은 목사의 철없는 투정을 주님은 어떻게 참으셨을까? “예지야. 그래도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웬일로 아이를 다독인다. 하나님께서 내게도 분명 그러실 거 같았다. 밤길이 어둡다. 하지만 곧 집에 도착한다.